친구와 갑작스레 약속이 생겼다.
별 생각없이 편한 후드 티셔츠, 청바지, 캐주얼한 가방, 운동화 차림으로 나갔다.
따스한 햇살과 머리카락을 스치는 가벼운 바람 그리고 MP3.
특별할 거 하나없지만 왠지 모르게 나들이 가는 것처럼 설레고 기분 좋은 느낌이었다.
그때부터 기분이 좋았던건지 아니면 좋아질려고 그랬던건지는 알 수 없지만...

역에 도착하고 벤치에 이어폰을 꽂은채 느긋하게 지하철을 기다렸다.
지하철이 바깥에 있는 곳이라서 바람과 햇살은 계속 느낄 수 있었다.
음악에 취해 지하철 처음 타보는마냥 이리저리 둘러보다가 멀리서 중년부부로 보이는 두 사람이 다가왔다.
할머니는 내 옆자리에 앉으셨는데 할아버지는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우물쭈물 어색해 하셨다.
남들에게 말걸기를 늘 쑥쓰러워하던 나였는데 왠일로 급 용기가 나서는 "여기 앉으세요^^"
말을 불쑥 내뱉고 냉큼 일어섰다.

그런데 어쩌다 본의아니게 그 두 분을 지켜보게 됐다.
부부가 서로 늙으면 데면데면해지기 마련인데 그 두분은 놀라울 정도로 다정스레 서로를 챙겨주는 모습이었다. 예전에 어떤 사람이 손을 꼭 잡고 걸어가는 노부부를 보면서 "놀랍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고 멋.있.었.다." 라고 했던 기억이... 그리고 그 말이 처음으로 이해가는 순간이었다.
그냥 스치는 기억으로만 남기기가 아쉬워서 두 분 모르게 카메라에 담았다.


사진을 찍는 순간, 내가 5-60대가 되면 누가 내곁에 있어줄지, 변함없는 마음으로 사랑하며 여생을 함께 할 수 있을지..이런저런 잡생각이 떠오르면서 서글퍼지는 마음도 없지 않았다.

지금에서야 생각하지만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아침8시, 저녁6시에 이용하던 지하철의 그 모습과는 많이 다른 느낌이었다.아침 출근시간에는 북적북적 천근만근 어깨에 무거운 짐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의 뒷모습, 퇴근시간이면 고단한 짐을 덜었으나 축저진 어깨로 돌아가는 뒷모습. 내가 기억하고 겪는건 그게 다였다.

두 노부부를 보게된 한적한 주말의 지하철은 늙어서도 기억하게 될 한 장면이 될 듯하다.
2008년 9월 28일 따스한 햇살, 가벼운 바람, 다정한 노부부 모든게 다 좋았던 어느 멋진 날을 기억하며.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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